서울.평양.동경 세도시를  연결하는 오페라가수 전월선의 오늘

전월선 약력

1959년 일본 출생. 일본음대의 명문인 도호가쿠엔대학 예술과 졸업.

1983 2회연속 리사이틀로 음단에 데뷰.

1985년 동경오페라 프로듀스공연에서 () (스페인의 時)의 주역으로 오페라데뷰.

본격파 오페라가수로서 폭넓은 가능성을 보여줌. 그후 ( 피가로의 결흔)의 케르비노역, (나사의 휘전)에서는 가정교사역, (道化師)의 네다역,(황금의 나라)의 유키 등 연이어 주역을 연기.새로운 오패라시대를 여는 대형신인으로서 여러 방면에서 기대를모음.해외에서도 세계음악제. 모스크바,중국각지에서 공연, 절찬받은바 있음. 현재 일본 니기카이오페라단 프리마돈나.

작년 1O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한국오페라단과 함께(카르멘) 의 주역을 연기' 극찬을 받은 바 있는 전월선씨 · , 85년 평양공연에 이어 서울에서의 공연을 실현' 처음으로 남북한 양        무대를 성공리에 장식한 재일동포 오페라가수이기도 한 그의 현재의 심경을 들어보았다·       

1월말 오후 동경 신쥬쿠예 있는 도코도청앞 광장에서 그와 만났다.

달력을 보면 당연히 겨울임에도 가을같이 상쾨한 바람이 둥근모양의 도청광장을 스쳐 지나가고 있던 바로 그때 무채색의 도시    풍경 속으로 산뜻한 빨간색 의상의 전월선씨가 나타났다.

1O월 한국공연때에는 예상했던대로 그의 경력과 체험이 화제가 되어 많은 매스컴으로부터 취재가쇄도, 일약 스타가 되었다.

 일본에 돌아간 뒤에도 역시 일본 매스컴으로부터의 취재를 받았지만 그중에는 오페라공연에 대해서보다는 미묘한 남북문제를 언급, 신경을 민감하게 자극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인터뷰어가 오랜 지인이였던 관계도 있어 편안한 분위기에서 근황을 들어보았다.

 Q 이번 공연을 계기로 처음 고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만 어떠셨습니까?

A. 저에게 있어 부모님이 태어나신 고향이기도 한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는 의미에서 또 오패라가수로서 금의환향했다는 의미에서 상당히 의의가 있었고 감동적인 여행이었어요.

서울의 오페라극장이 동양제일이라고 알려질 정도로 훌롱한 곳이어서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기는했지만 같은 민족으로서 자부심을 느껐지요. 또 이번 카르멘 공연은 연출가가 이탈리아인이고 지휘자는 러시아인 그리고 가사는 프랑스어로 대단히 국제적인 작품이었는데 출연자 수만도 총 400여명의 한국인이        출연한 그야말로 성대한 공연이었습니다.

 

Q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신 분이 처음으로 조국        의 무대에 서 갈채를 받게 되었습니다만 실제 어떤 분위기였습니까?

A 스탭이나 함께 출연했던 무대관계자들이 항상 친절히 대해주셨고 공연때는 관객들의 따뜻한 박수갈채

 속에 무대에 서 정말 감개무량했습녀다.  

제 오랜 꿈이 남북 양 무대에 서는 것이었거든요. 왜냐하면 저에게 있어 조국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 이지요.    

Q 공연이 끝난 다음에도 당분간 한국에 체재하셨던걸로 압니다만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A 부모님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에 가서 친척분들과 만났고 또 함께 선산에 성묘도 했습니다.

 그때 한국인이라는 제 뿌리를 다시 한번 확인할수 있었어요.

 

Q 고향 사람들에게서는 어떤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A 제 경우에는 우선.말이 통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쉽게 친해졌어요.

 

Q일본에 돌아가서도 무대에 서고 계십니다만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큰 목적을 달성한 뒤에 무언가 변한것이 있습니까?

A 남북 양쪽 무대에 서보고 나서 나름대로 마음의 결론을 얻었기 때문에 재일교포 2세인오페라가수로서의 만족감과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이전보다 더욱 충실한 마음으로 무대에 설수 있게 되었습니다.

 

Q요즘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계십니까?

A 올해는 해방 5O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고 제 개인적으로도 남북공연을 마무리 짓고 난후 일단락을 짓는 의미에서 또 개선공연으로서 동경에서 리사이틀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그 준비로 상당히 바쁩니다.

리사이틀에서는 물론 한국가곡도 부르고 2부에서는 한국에서 절찬받았던 카르멘의 하이라이트를 동경팬에게 들려 드리려고 해요. 일본 매스컴도 상당히 기대하고 있는지 요즘에 취재의뢰가 많이 들어 온답니다.

 

Q일본에는 한국과 같이 훌륭한 오페라하우스도 없는 등 시설도 열악해 오페라가수로서 생활하시기가어렵지 않을까생각합니다만.

A  확실히 오페라가수로서 생활하기에는 참 어려워요.  그래도 제 경우에는 이 일본 땅에서 전월선이라는 본명으로 출신을 숨기지 않고 주역을 따 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단 한번도  버려 본적이 없습니다.

단지 오페라가수로서 생활하는 것은 재일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이 나라에서는 무척 어렵습니다.

        경제적인 면도 물론 그렇고 시설 등도 열악함에는 틀림없어요.  저는 지금 동경의 신쥬쿠에 살고 있습니다만 여기는 연습장도 별로 없어 연습장 찾아내는 것만도 너무 힘들어요.

특히 오페라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적어서 혼자 이 정도까지 해 오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조건속에서도 제 노래를 즐겨주시는 재일한국인을 포함, 데뷰당시부터 응원해 주시고 계신 많은 일본인들이 계셔서 저는 행복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Q평상시에는 무엇을 하십니까?

A 평상시에는 예술가로서의 훈련에 주로 시간을 보냅니다.

발성연습을 하거나 제 경우 춤추는 것이 강점이기 때뚠에 무용연습을 한답니다.또 세계 각국의 노래를 불러야 하니까        어학공부도 빼트릴수 없지요. 하지만 워낙 자연을 좋아해서 가끔씩은 바다에 가거나 공원으로 나간답니다· 또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하구요·

 

Q 리사이틀 이외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만·

A 5월의 리사이틀이 끝난 뒤에도 올해가 해방 5O년이라 일본내에서 열리는 관련행사에 여기저기 참가하기로 되어 있어요· 또 오페라의 새로운 레파토리를 연구하는 한편 오랜동안        해왔던 한국가곡의 연구를 더욱 진전시켜 한국가곡만으로 구성한 공연도 할 계획입니다·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일본문화청이 주최하는 애술제에 참가하려고 해요·서울에서도 또 공연해 보았으면 하구요· 가능하다면 언젠가 한국의 오페라가수들을 일본으로 최빙 ' 함께 오페라공연을 해 일본의 여러분들께 한국의 우수한 가수들을 소개해 보고 싶어요.

 

 Q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A 감사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해도 서녘 하늘로 서서히 저물어가는 그때부터 다시 후라멩고 연습장으로 향하는 그녀를 역까지 전송,        리사이틀의 성공을 빌었다. 남북 공연이라는 거대한 꿈을 성취한 지금 확실히 이전의 전월선과는 달라졌다. 예술가로서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5월의 리사이틀도 분명 성공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더욱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세계를 향해 약진해 가리라고 믿는다.리사이틀은 512일 도쿄 나까노의 나까노 제로흘에서 열린다.5월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은 꼭 한번 관람하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