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11 月刊音樂

나의 삶 나의 음악 전월선

지난달 7일 에술의 전당 무대에 첫선을 보인.카르멘.에는 여태껏 만나지 못했던 카르멘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월선. 조선국적을 가지고 고등학교까지 조총련계의 민족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북한에서의 초청공연도

가진 특이한 경력이 있는 소프라노.김일성주석을 위한 특별 연주회까지도 가진 특이한 경력의 소프라노의 서울 무대인 만큼 청중은 그녀의 등장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우선관객들의 시선을 끈것은 노력한 춤솜씨였다.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카르멘의춤이 시작되자 객석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연기 또한 수준급이어서 어설픈 영화배우들의 민만한 연기를 능가하는 프로급솜씨를 보여주었다,상대가 노래하고 있는 동안 이쪽에서 얼마나 감정을 살려주고 자신의 역할을 돋보이게 하느냐가자신이 노래를 직접하는 액션보다 더 중요하고 눈에 渗榮?것이기때문이다. 전월선의 카르맨은 우아했다.이번 공연을 앞두고 월간음악과 가진인터뷰에서 그녀는..카르맨은 천박하고.열정적인 여인이라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지만 저는 그런 카르멘을 보여드리고싶지않아요 사랑이많은 여인. 그게 제가 표현하고싶은 카르멘이지요..라고 밝힌 바 있다.키리 테 카나와를 우상처럼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전월선의 노래에 그토록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이유를 알수 있을 것같았다,

일본만의 정상이 아닌 세계정상으로

니기카이(二基會)는 일본 최고의 전통과 실력을 자랑하는 오폐라단이다. 대학 재학중 전월선은 r.쉬트라우스의 악 극을 일본식으로각색한.머리좋은 암여우.를 보게되고 오페라가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갓게되었다.졸업과 동시에 니기카이 연구소에서 개최한 오디션에 합격하게된다.도호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 한

 전월선은 3년간의 연기 .연출 과정을 니기카이에서 익힐 수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니기카이 오디션은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규정곡으로 이탈리아 아리아를 하나 불렀고. 자유곡으로오페라.심청전. 의 아리아 ..를 불러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남보다오페라와 접하게된 것은 상당히 늣은 셈이지만 처음 만난 오페라가 니기카이에서 오페라를 베우게  되었으니 상당한 인연이있는 셈이지요...

 83년 리사이틀 데뷔 후 85년 네리마 문화센터에서 프랑크의  1인오페라 ....과 라벨의/스페인의 시/에서 의 주역을맡아 하룻밤의 공연에서 두 번의 변신을 보여주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눈앞서 보는 사람조차전혀 다른 사람이 등장한 것으로 착각한다 .라는평가를 받으며 당당하게 일본 무대에데뷔한 것이다 .또한 85년에는 북한공영. 86년 에는 소련 콘서트와 중국 순희연주 등 데뷔와 동시에 일본에서 가장 바쁜 성악가 가 되었 다.

 87.살로메..공연 때 7개의 베일의 춤을 추는 장면이 포커스라는 사진 잡지에크게 실린 적이 있어요 .한페이지 전체크기로 사진과 기사가 났는데.주위분들이.오페라가수로서는 처음 있는일.이라고하시더군요.전회 입석 관객이 들어찰 만큼 성공적인 공연이었습니다.//

 .카르멘.의성공 이후 전월선은 니이카이의 대표적인 프리마 돈나로서 .나비부인..카르멘.등의 타이틀 롤을맡아 활동하고있다.

그녀가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재일교포로서 페쇄적인 일본사회에서 활약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것인지 우리는 짐작할 수있다.우리 할아버지.할머니의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고치려 들었던 그들 앞에서 전월선이란 한국이름을 당당히 사용하기는 얼마나 많은 유혹이 따르는것일까..덴 스키센.보다는 어눌하지만.저누 워루 선. 으로불리는 편을 선택한 그녀.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우리 음악가들이많지만 자신의조국이주는의미를 그녀만큼 깊게가슴에 새기고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결혼이요?저는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만 저처럼 바쁜사람과 같이사는 남자가 불쌍해질 것 같아요.제가 바빠서집안에서 잘돌봐주지도 못할테고...

이렇듯 고운 마음씨를 가진 우리 동포가일 본의 하늘 아래에서 당당하게 활동하고있다는것이 흐뭇하게느껴진다.